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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가 새롭게 공개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author.k 2020. 6. 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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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14일.

 

보이저1호는 지구와 61억km 떨어진 우주에서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카메라를 뒤로 돌려

지구를 촬영했습니다.

 

그래서 우주 탐사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또 철학적인 사진 한 장을 지구로 전송했죠.

 

많은 분들이 보셨을 바로 이 사진입니다.

 

 

저 원 안의 작은 점이 지구입니다.

 

보이저1호가 보낸 64만 화소의 데이터 중

화소 하나 만큼도 차지하지 않는 0.12화소 크기의

저 작은 점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입니다.

 

보이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저 사진 속 너무나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렀죠.

 

그리고 NASA는 이 사진의 발표 30주년을 기념해

최근 새롭게 디지탈 리마스터링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리마스터링 된 이 사진에서도 지구는 워낙 작은 점이라

스마트폰에선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보이저호의 영상팀 멤버였던 게리 헌트는

1990년 처음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고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사진을 통해 지구가 별 사이에 위치한 작은 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으스스한 사진이었다."

 

'으스스한(Chilling)'이라는 단어는

그가 신중하게 고른 단어였습니다.

 

 

이 사진은 우주의 끝에서 지구를 찍은 게 아닙니다.

 

태양계를 벗어나지도 못한,

겨우 명왕성의 공전 궤도 부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일 뿐이죠.

 

현재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466억 광년의 반지름을 가진

구 형태입니다.

 

빛의 속도로 자그마치 466억 년을 날아가야

겨우 인류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끝자락에 도달한다는 것이죠.

 

466억 광년 너머로도 우주는 계속해서 펼쳐져 있지만

그 너머 우주의 빛은 지구에 닿지 않기 때문에

관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주의 광활함이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런데 빛의 속도로

고작(!) 몇 시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지구는

그 존재조차 희미한 창백한 푸른 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게리 헌트가 이 사진을 보고 '으스스하다'고 표현한 건

저 사진 너머 우주의 광활함을 생각하니

더욱 공포스러웠기 때문일 겁니다.

 

이 먼지만도 못한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고작 백여 년을 살다 죽어가는 인간은

자신들의 하찮음과 덧없음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선택된 생명체라고 자위하기도 하죠.

 

 

그러나 이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은

우리 존재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과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이저1호가 지구를 촬영하도록 한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란 제목의 책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던졌죠.

 

다만 온라인에선 그 내용의 일부만 인용되기에 

칼 세이건이 책을 쓴 의도가 

다 전달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섬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보라.

 

이 작은 섬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보라.

 

이 작은 섬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가에

우리를 구원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이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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