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퇴원 뒷얘기
트럼프의 퇴원 뒷얘기
1.
트럼프가 입원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주치의 Dr. Conley가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의 의사인지에 대해 갑자기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을 만큼 사람들은 그의 존재에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주치의에 대해서 언론이 살피기 시작한 건 그의 첫번째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백악관은 계속 "약한 증상들(mild symptoms)"라고만 말하는데 입원을 한다는 걸 수상하게 생각한 기자들이 주치의에게 핵심적인 몇 가지를 물었다.
가장 먼저 나온 질문 중 하나가 "대통령이 산소요법(supplemental oxygen)을 받았는가?" 이건 산소호흡기와는 다르다. 하지만 혈중산소 농도가 낮아질 때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가벼운 증상이라고 할 수 없다.
2.
그런데 주치의는 그 단순한 질문에 답을 회피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None at this moment, and yesterday with the team, while we were all here, he was not on oxygen."
지금은 하지 않고 있고, 어제 우리 치료팀과 있을 때 하지 않았고, 우리가 여기(월터리드 군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산소공급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대답을 들은 직후부터 대부분의 언론사가 주치의의 말을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결국 그 말은 트럼프가 산소공급을 받은 적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을 시인하지 않기 위해 길게 돌려서 말한 거다.
3.
애초에 기자들이 트럼프가 경증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게 된 이유는 (그렇게 강한 척 하는 인간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사실 외에도) 비서실장이 토요일에 "지난 24시간 동안 대통령의 vital(활력징후)이 몹시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트럼프의 비서실장이 몹시 우려(very concerning)이라고 했을 때는 의료진에게서 전달받은 내용일 텐데 주치의는 마치 트럼프가 가벼운 감기증상 정도인 것 처럼 이야기하니까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온 거다.
주치의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다. 몇 달 전 트럼프가 효과가 증명도 되지 않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해서 "잃을 게 뭐가 있냐"는 무책임한 소리를 하던 시점에 트럼프의 편을 들어준 의사라고 하고, 모든 것을 봤을 때 트럼프가 원하는 걸 잘 들어주는 인물로 보인다.
4.
그럼 주말에 병원에 있는 동안에 트럼프는 무슨 처방을 받았을까?
실험 중인 치료요법이다. 렘데시비르와 스테로이드를 맞았다고 한다. 잘 알려진 CNN의 의학기자 산제이 굽타를 비롯해서 많은 의사들이 이 치료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가장 설득력있게 설명한 건 블룸버그 뉴스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VIP 신드롬'이라는 게 있다. 중요한 인물이나 큰 부자들의 경우 의사들이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일반인들에게는 하지 않는 실험적 처방을 너무 일찍, 너무 과하게 해서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잘 알려진 의학계의 문제.
트럼프는 이제 코로나19가 시작되었는데 초기에 강한 처방을 쏟아넣으면 실제 병의 진행상황을 살펴볼 수 없어서 위험하다는 거다.
5.
산제이 굽타는 렘데시비르와 스테로이드는 함께 처방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처방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이렇게 처방했다면 트럼프는 병원에서 면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상태라는 거다.
문제는 스테로이드가 들어가면 환자는 몸에 기운이 나면서 다 나은 것처럼 느끼는데, 그건 실제 진행 상태를 가리는 가면으로 작용해서 환자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즉, 이렇게 처방했다면 의사가 주도권을 쥐고 관찰해야 하는데 트럼프가 기운이 넘친다고 백악관으로 가겠다는 걸 아무도 말리지 않는 거다.
6.
게다가 지난 주말 동안에 트럼프가 쏟아낸 트윗들을 보면 이 사람이 지금 말 그대로 "on steroids" 상태인 게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0년 동안 이렇게 몸 컨디션이 좋은 적이 없었다"고 쓴 건 지금 스테로이드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착각하는 것이고,
평소보다 더 짧고 반복적인 트윗을 날리는 것도 트럼프가 스테로이드의 영향 하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마디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 같지 않다는 거다.
7.
핵심은 주치의와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걸렸으면 낫는다해도 나을 때까지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는데 그걸 무시한다는 것, 그리고 트럼프의 상태를 알기 위해 중요한 바이러스량(viral load)이나 폐사진을 보여달라면 마치 '정치적인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겠다'는 투로 피하는 거다. 그리고 "대통령의 기분이 좋다"는 식의 좋은 얘기만 한다.
"환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란다. 언론들은 기가 막혀한다. "언제부터 대통령의 상태가 개인정보였나?" "좋은 얘기는 개인정보가 아니고 나쁜 얘기만 개인정보인가?" 이게 언론이 묻는 질문이다. 백악관에 돌아가서도 최고의 시설과 의료진이 있기 때문에 가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주치의의 주장인데, "그럼 병원에는 애초에 왜 왔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정보를 숨기면 의심이 생긴다. 이런 불변의 법칙이다.
8.
무엇보다 지금 트럼프는 바이러스량이 왕창 증가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자 집인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거다. 알다시피 일요일에는 창문 닫힌 자동차를 타고 병원 밖을 나와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카퍼레이드를 했다. (트럼프의 가장 심각한 병은 코로나19가 아니라 관심병이다). 그 차에 탄 경호원들은 무슨 죄인가??
이 사람은 자신이 이제까지 한 말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누워있는 걸 국민들이 보는 게 죽기보다 싫은 거다. 백악관 직원과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걸 감수하고도 강한 척을 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백악관에 돌아가자 마자 보란 듯이 마스크를 벗었다. 지지자들에게 마스크를 벗고 다니라고 보내는 신호다. 정말 혐오스럽다..
9.
그럼 트럼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주치의와 다른 의사들이 동의하는 것 한 가지가 있다.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다. 중요한 정보를 감추는 바람에 숨바꼭질을 하고 있으니 어떤 쪽으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지켜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