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영화 같은 동성애 고백에 난리 난 연세대 대나무숲 상황 본문
여대생이 익명 커뮤니티에 올린 동성애 고백이 영화 같은 결말을 맺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4일,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라는 글이 올라왔다. 올해 2학년으로 올라가는 여학생이 절친한 언니에게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는 글이었다.
여학생은 새내기 시절, 같은 과 언니가 새터 강의실까지 데려다준 이후 줄곧 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여러 핑계를 대며 같이 밥을 먹었고 기타를 치는 언니가 공연을 할 때면 선물을 사들고 공연장을 찾아갔다. 친해진 후에는 술을 마시고 언니 자취방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 하지만 언니를 향한 감정을 들키면 자신을 싫어할까 봐 고민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비겁하고 못되고 거짓투성이인 사람이라서 미안해. 그냥 나를 가만히 밀어내면 돼. 욕을 해도 괜찮고, 원망해도 상관없어. 지난 1년간의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을게. 사랑해"라며 익명으로나마 사랑을 고백했다.
그런데 사흘 뒤인 7일, "당황하거나 충격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야"라는 글이 올라왔다. 놀랍게도 언니가 보낸 화답이었다.
언니는 친한 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동생이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 내리든지 간에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는 "대숲 이런 거 말고 직접 내게 와 줘. 다시 내 엉망인 기타 연주를 봐 줘.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에 다시 독립문으로 향하자고 해 줘. 내가 받았던 그 꽃다발에 담긴 마음을 다시 보여 줘. 네가 하고 싶은 만큼 나를 사랑해줘. 내가 그 마음을 돌려줄 수 있게"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답변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누리꾼들은 이뤄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익명 고백이 뜻밖의 결말을 보이자 놀랍다는 반응이다. 7일 현재 동생과 언니의 글은 수백 회 이상 공유와 댓글을 받으며 확산 중이다.
아래는 동생의 글이다.
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스무 살이어서 그렇겠지, 새내기라서 그렇겠지, 내가 처음 접한 대학이라는 곳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로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하니까, 모든 게 다 설레고 즐거우니까, 한때 지나가는 순간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밤을 지새우는 건, 그 밤을 지새우는 시간이 1년이 넘어가는 건, 밤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이 감정이 강렬해지는 건 당연한 거겠지.
언니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감정이 강렬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
새내기 오티 때 늦으면 큰일 난다는 건 누가 알려 준 걸까. 탁 트인 백양로에서 건물 하나를 못 찾아 잔뜩 울상이 된 나를 언니는 어떻게 봤을지, 그런 내가 언니에겐 어떻게 보였을지, 아직도 궁금해. 마침 같은 과 선배였던 언니는 나를 친절하게 강의실까지 데려다 줬어.
그때 앞서 걸어가던 언니 등에서 흔들렸던 그 까만 기타 가방.
강의실 문을 열어주고, 다른 볼일이 있다며 돌아가려는 언니를 붙잡지 않고, 이름 한 번 물어보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던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몰라. 한껏 멋부리느라 2월의 추위는 가늠하지도 못한, 붉어진 내 뺨을 보고선 춥겠다, 오티 재밌게 보내요! 하는 게 돌아서는 언니의 인사였어.
이유가 뭔지도 밝혀낼 수 없던 내가 새내기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온갖 핑계를 대 언니와 밥약을 하는 거였어. 언니의 카톡 하나에 설레 몇 시간 동안 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던 나를 언니는 절대 알 수 없겠지.
<친구> 얼마나 포장하기 쉬운 관계야.
차라리 우리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면. 내 머릿속에 있는 온갖 더러운 생각을 싹부터 잘라낼 수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를 이루는 건 쌍방의 우정밖에 없고 이 우정은 절대 변치도 않고 불균형하지도 않고 비대칭이지도 않아서, 평범하면서 특별한 삶을 살아갈 서로의 삶에 영원한 지지자이자 친구이자 추억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내가 언니에게 그런 사람으로 평생 남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날 기억나? 여름 장마 날, 우산도 없이 학교에서 독립문까지 걸어갔던 날. 흐린 하늘 밑에서 우산을 푹 눌러쓴 사람들이 얼마나 바보같아 보였는지 몰라. 그렇게 미친 것처럼 웃고, 뛰고, 달리면서 한참을 흠뻑 젖었잖아. 터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짧은 머리를 손으로 넘기며, 언니는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화장 지워진 거 신경쓰지 마, 지워져도 예뻐.
독립문에 도착했을 때 영화처럼 비가 그쳤다면 더 좋은 추억이 됐을까? 아냐,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을 거야. 회색빛이 된 독립문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다가 야, 근데 우리 여기 왜 왔냐, 하는 언니의 말에 나는 키득거렸지. 다시 비를 맞으며 신촌으로 돌아가 흠뻑 젖은 채 먹었던 치킨은 세상에서 가장 바삭하고 따뜻했어. 너무 축축해서찝찝해, 우리보다 치킨이 더 바삭한 것 같아, 아, 튀겨지고 싶다. 언니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수만큼 그날 나는 쉴새없이 웃었어.
언니 자취방에서 같이 술 마셨던 날, 우리가 어릴 적의 곰인형과 부모님의 첫 부부싸움을 목격한 날과 첫사랑과 오티 날 입었던 옷과 어울리지 않았던 화장과 가장 즐겁게 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날, 같은 침대에서 잤을 때 내가 얼마나 떨렸는지 알아? 굳이 바닥에서 잔다고 하는데도, 침대에 올라와서 자라는 언니의 말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알아? 나 그날 한 숨도 못 잤어. 언니 옆에 눕자마자 술이 번쩍 깨더라. 혹시 실수하면 어떡하지, 언니를 안아 버리면 어떡하지, 언니에게 입을 맞추면 어떡하지. 결국 나는 침대에서 잠든 언니를 두고 바닥에서 내려와 누웠어. 나는 누워있는데, 내 심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친 말처럼 달려 대더라.
언니를 생각하다 스물한 살이 됐어.
언니는 아직도 기타를 쳐. 짧은 머리를 까닥이며 연주하는 모습에 나는 몇 번이고 반했던 거야.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언니에게 안겨줬던 꽃다발 속에, 내 새빨갛고 뜨거운 마음이 한 잎 한 잎마다 묻어 있는 게 죄스러워서 나는 축하한다는 말도 속시원히 해 본 적이 없어.
매일 밤 기도했어. 내가 가진 마음을 죄라고 말하는 신에게 절박하게 빌었어. 내일 자고 일어나면 이 마음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랐어. 많이 미안했고 많이 두려웠어. 이 마음을 언니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배신감이 들까. 세상에서 가장 친한 동생이라고 나를 소개하는 언니가 이 마음을 알게 된다면.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언니이지만 언젠간 이 글을 보게 되겠지. 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비겁하고 못되고 거짓투성이인 사람이라서 미안해. 그냥 나를 가만히 밀어내면 돼. 욕을 해도 괜찮고, 원망해도 상관없어. 지난 1년간의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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