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알렉산더 대왕이 경험한 아프가니스탄.txt 본문
알렉산더는 헤라트 근처에 도시를 세웠고 진군해 나갈 때 마다 부족 지도자들의 극렬한 저항을 받으면서 차례 차례 겨우 점령했을 뿐이었다.
"일찌기 아프가니스탄 땅을 침공했던 알렉산더왕은 이후 이 곳을 침공한 모든 점령자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것은 척박한 기후와 험준한 지형, 그리고 싸우기를 즐긴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호전적인 원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이다." 전쟁 사학자인 레이몬드 칼라한의 말이다.
그처럼 알렉산더 대왕은 가장 극적인 싸움을 이곳 아프가니스탄 전투에서 맞이하게 된다. 대왕의 진군로는 헤라트에서 발루치스탄으로 향했다.
(중략)
스티파메네스는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산악지역을 이용하여 게릴라 전술을 펴면서 저항했다. 2년동안 게릴라 전술에 고전하는 알렉산더는 결국 배신자 스티파메네스를 물리쳐 그를 죽였다.
마지막 남은 산은 바로 박트리아의 유력 귀족인 옥쉬아르테스였다. 그는 소그디아나의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산 꼭대기에서 배수진을 치며 알렉산더 대왕을 맞이했다. 이 바위산은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요새였다. 알렉산더는 소수의 정예 병사로 하여금 바위산을 오르게 하여 옥쉬아르테스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알렉산더는 항복한 옥쉬아르테스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그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의 박트리아를 완전히 정복한 것이다.
이로써 대왕은 아프가니스탄과 그 배후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것이다. 알렉산더 원정사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최대의 격전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바로 험준한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이곳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정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만큼 땅이 척박하고 험준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부패로 사양길에 접어든 페르시아 왕국의 일부분이었지만 정복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쨌든 알렉산더 대왕은 아프가니스탄을 그리스의 일부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했고, 그의 아프가니스탄 정벌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점령군은 피정복자들의 조직적이고 거센 반란과 항전으로 인해 심한 고생을 해야 했다.
오죽했으면 알렉산더 대왕은 그 와중에서 죠세핀과 이혼하고 아프가니스탄 지도자 옥쉬아르테스의 딸과 결혼하기도 했을까. 이는 박트리아와의 화해의 표시이기도 했던 것이다. 알렉산더의 부인이 된 옥쉬아르테스와 그녀의 부친은 그리스 정복자들에게 저항하지 말도록 지역의 족장들을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이처럼 알렉산더는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동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점령되지 않았던 위험한 땅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하게 장악하여 지배하는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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