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유아인도 한서희는 그만 상대하는게 좋을듯.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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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이 SNS 페미니스트들과의 폭풍 같은 설전을 이어갔다. 과격한 단어의 사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아인은 27일 자신의 SNS에 "저의 애호박에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보신 분들께는 기꺼이 사과하겠습니다. 저의 '꼴페미' 발언이 정신을 상실하고 온라인 생태계와 인권 운동의 정신을 교란하는 폭도들이 아닌 진정한 '여성'들에게 향했다는 억지를 사실로 입증한다면"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 네티즌이 "개인적으로 제가 여성임을 입증하고 피해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면 되냐"고 묻자 유아인은 "정확합니다. 전쟁의 지속을 원하는게 아니라 당당하게 시정을 원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본인의 성별을 입증하는 것이 과중한 숙제입니까?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시려면 익명의 계정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먼저 입증하세요"라고 답한 뒤 "정상적 사고와 인격을 가진 모든 여성분들께 호소합니다. 부당한 폭도의 무리가 '여성'의 명예와 존엄함을 먹칠하는 현재의 상황을 방관하지 마십시오. 있는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네티즌에겐 "나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당신의 폭력에 응할 수 없지요. 꿈 깨세요"라며 "일해라 절해라 하시고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니 글을 삭제하십니까. 오타 하나에도 떼로 몰려들어 물고 뜯는 하이에나의 비겁함 잘 감상했습니다"라고 도발하기도 했다.
이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유아인씨는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면서 본인의 지위와 여론을 남용한 성별대립과 투쟁을 일삼으며 본인이미지를물타기하는 모습이 보기 안좋다", "님도 유리하게 몰고 갈 수 있는 글과 실수를 가지고 물어뜯지 않냐"며 맞대응하고 있다.
유아인은 지난 24일부터 트위터를 통해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들과 설전을 벌여오고 있다.
어쩌다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가 되었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왜 남성들을 몰이해하는 자로 여겨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오직 그 안에서만 존재한다. ‘메갈짓’이니 ‘한남충’이니 그 밖의 논란들은 페미니즘을 왜곡하고 있을 뿐이다. 허구에 실체가 가려져 간극과 오해를 만들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양성과 모든 소수자들의 평등을 위해 존재한다.
페미니즘을 정의한 이유는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자(남혐)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해는 너무 깊은 나머지, 여성의 인권과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분위기다. 이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적인 꼴통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골수 취급을 받는다. 이틀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배우 유아인의 페미니스트 논란이 이 공식을 증명한다.
유아인이 SNS를 통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했다. 가정사와 경험에 빗대 여성들의 억압된 성 역할에 대해 설명했고,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곧바로 SNS 전쟁이 시작됐다. 최근 온라인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여혐 vs 남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유아인의 글을 본 순간부터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남녀 갈등이 일상을 파고들 정도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 역시 감지했을 것이다. 유아인의 글이 본질과 무관한 논란들로 채워질 것임을.
예상대로 유아인의 글은 공식처럼 남혐, 여혐 논란으로 흘렀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라진 채 ‘관심 종자’ 취급을 받더니, 이제 애호박이라는 말장난에서 시작된 여혐 논란만이 문제로 남은 상황이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혔건만, 엉뚱하게 여혐 논란이 촉발됐다. 유아인의 글 어디에서도 혐오를 감지할 수 없건만, 어느새 그는 남성과 여성을 혐오하는 차별주의자가 됐다. 논란의 흐름을 보라. ‘페미니스트=혐오주의자’이라는 공식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유아인은 흥미로운 배우다. 그의 연기사와 필모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셀럽으로서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고집은 배우는 겸손하길 바라는 한국 (일부) 네티즌의 정서와 대치한다. 한국 네티즌들은 도덕적인 부분에서 자신들이 셀럽들 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가르칠 수 있다고 여긴다. 네티즌은 설렙들과의 설전에서 언제나 승리했다. 기어이 사과를 받아낸다. 그러나 유아인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들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다. 심지어 유아인은 이걸 즐긴다. 사랑이라고 포용하면서, 그들에게 유아인 같은 ‘별종’은 처음인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인기를 얻을수록 몸을 사라기 위해 할 말을 자제하는 것이 이 업계에서 살아가는 스타들의 생존 방식이다. 실제 생각이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은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긴다. 광고계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는 유아인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악플에 항의하고, 제 손으로 댓글을 단다. 깐족거리는 댓글에는 같이 깐족거리고, 진지한 댓글에는 진지함을 덧붙이며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이 행위가 SNS 문화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 듯하다. 가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자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유아인의 SNS는 즐겁다. 잃는 것이 많을 논란에도 그는 고개를 수그리지 않는다. 이 행위를 신성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혐이라는 오해를 살 것이 뻔한데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고, 지속적으로 익명의 사람들과 설전을 벌이는 유아인의 고집은 눈여겨볼 만 하다. 물론 유아인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넘치면 모자른 것보다 못한 순간에도 그는 감정을 표출한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와 문제들에 침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손익을 계산하며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는 연예계에서 유아인 같은 별종은 존재해야 한다. 다양성은 보장되야 하고, 그 안에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누군가에게 페미니즘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유아인에겐 페미니즘을 옹호할 자격이 있다. 언급 자체를 막으려는 건 폭력이다.
유아인은 27일 자신의 SNS에 "저의 애호박에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보신 분들께는 기꺼이 사과하겠습니다. 저의 '꼴페미' 발언이 정신을 상실하고 온라인 생태계와 인권 운동의 정신을 교란하는 폭도들이 아닌 진정한 '여성'들에게 향했다는 억지를 사실로 입증한다면"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 네티즌이 "개인적으로 제가 여성임을 입증하고 피해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면 되냐"고 묻자 유아인은 "정확합니다. 전쟁의 지속을 원하는게 아니라 당당하게 시정을 원하신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본인의 성별을 입증하는 것이 과중한 숙제입니까?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시려면 익명의 계정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먼저 입증하세요"라고 답한 뒤 "정상적 사고와 인격을 가진 모든 여성분들께 호소합니다. 부당한 폭도의 무리가 '여성'의 명예와 존엄함을 먹칠하는 현재의 상황을 방관하지 마십시오. 있는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네티즌에겐 "나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당신의 폭력에 응할 수 없지요. 꿈 깨세요"라며 "일해라 절해라 하시고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니 글을 삭제하십니까. 오타 하나에도 떼로 몰려들어 물고 뜯는 하이에나의 비겁함 잘 감상했습니다"라고 도발하기도 했다.
이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유아인씨는 페미니스트라 주장하면서 본인의 지위와 여론을 남용한 성별대립과 투쟁을 일삼으며 본인이미지를물타기하는 모습이 보기 안좋다", "님도 유리하게 몰고 갈 수 있는 글과 실수를 가지고 물어뜯지 않냐"며 맞대응하고 있다.
유아인은 지난 24일부터 트위터를 통해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들과 설전을 벌여오고 있다.
어쩌다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가 되었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왜 남성들을 몰이해하는 자로 여겨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오직 그 안에서만 존재한다. ‘메갈짓’이니 ‘한남충’이니 그 밖의 논란들은 페미니즘을 왜곡하고 있을 뿐이다. 허구에 실체가 가려져 간극과 오해를 만들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양성과 모든 소수자들의 평등을 위해 존재한다.
페미니즘을 정의한 이유는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자(남혐)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해는 너무 깊은 나머지, 여성의 인권과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분위기다. 이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급진적인 꼴통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골수 취급을 받는다. 이틀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배우 유아인의 페미니스트 논란이 이 공식을 증명한다.
유아인이 SNS를 통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했다. 가정사와 경험에 빗대 여성들의 억압된 성 역할에 대해 설명했고,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곧바로 SNS 전쟁이 시작됐다. 최근 온라인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여혐 vs 남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유아인의 글을 본 순간부터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남녀 갈등이 일상을 파고들 정도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 역시 감지했을 것이다. 유아인의 글이 본질과 무관한 논란들로 채워질 것임을.
예상대로 유아인의 글은 공식처럼 남혐, 여혐 논란으로 흘렀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라진 채 ‘관심 종자’ 취급을 받더니, 이제 애호박이라는 말장난에서 시작된 여혐 논란만이 문제로 남은 상황이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혔건만, 엉뚱하게 여혐 논란이 촉발됐다. 유아인의 글 어디에서도 혐오를 감지할 수 없건만, 어느새 그는 남성과 여성을 혐오하는 차별주의자가 됐다. 논란의 흐름을 보라. ‘페미니스트=혐오주의자’이라는 공식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유아인은 흥미로운 배우다. 그의 연기사와 필모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셀럽으로서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고집은 배우는 겸손하길 바라는 한국 (일부) 네티즌의 정서와 대치한다. 한국 네티즌들은 도덕적인 부분에서 자신들이 셀럽들 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가르칠 수 있다고 여긴다. 네티즌은 설렙들과의 설전에서 언제나 승리했다. 기어이 사과를 받아낸다. 그러나 유아인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들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다. 심지어 유아인은 이걸 즐긴다. 사랑이라고 포용하면서, 그들에게 유아인 같은 ‘별종’은 처음인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인기를 얻을수록 몸을 사라기 위해 할 말을 자제하는 것이 이 업계에서 살아가는 스타들의 생존 방식이다. 실제 생각이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은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긴다. 광고계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는 유아인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악플에 항의하고, 제 손으로 댓글을 단다. 깐족거리는 댓글에는 같이 깐족거리고, 진지한 댓글에는 진지함을 덧붙이며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이 행위가 SNS 문화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 듯하다. 가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자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유아인의 SNS는 즐겁다. 잃는 것이 많을 논란에도 그는 고개를 수그리지 않는다. 이 행위를 신성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혐이라는 오해를 살 것이 뻔한데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고, 지속적으로 익명의 사람들과 설전을 벌이는 유아인의 고집은 눈여겨볼 만 하다. 물론 유아인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넘치면 모자른 것보다 못한 순간에도 그는 감정을 표출한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와 문제들에 침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손익을 계산하며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는 연예계에서 유아인 같은 별종은 존재해야 한다. 다양성은 보장되야 하고, 그 안에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누군가에게 페미니즘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유아인에겐 페미니즘을 옹호할 자격이 있다. 언급 자체를 막으려는 건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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